
수상을 거부하고, 메달을 산에 녹이고, 죽은 뒤에도 수상자가 된 사람들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벨상이라고 하면 엄숙한 시상식과 세계적인 과학자, 작가, 평화운동가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1901년 첫 시상 이후 120년이 넘는 역사를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기묘한 사건이 많았습니다. 노벨상을 받고도 스스로 거절한 사람이 있었고, 정부의 압력 때문에 받을 수 없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치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금메달을 왕수에 녹여버린 과학자가 있었으며,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발표하고 나서야 그 사람이 이미 사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평화의 상인 노벨평화상 후보 명단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까지 등장합니다.
오늘은 단순히 유명한 수상자가 아니라, 노벨상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노벨상 이야기 TOP 10을 소개합니다.
⚠️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 노벨상 후보가 됐다는 것은 노벨위원회가 그 사람을 지지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추천서를 제출하면 후보 기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히틀러의 1939년 추천은 풍자를 목적으로 제출됐다가 곧 철회됐습니다.
🏆 TOP 10 한눈에 보기
순위 이야기 연도 가장 특이한 점
| 10위 | 17세 말랄라의 수상 | 2014 | 역사상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
| 9위 | 퀴리 가문의 노벨상 | 1903~1935 | 한 가족에서 노벨상이 연이어 탄생 |
| 8위 | 사르트르의 수상 거부 | 1964 | 스스로 노벨문학상을 거절 |
| 7위 | 파스테르나크의 강제 거부 | 1958 | 처음 수락했다가 소련 압력으로 포기 |
| 6위 | 레득토의 평화상 거부 | 1973 |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거절 |
| 5위 | 로보토미로 받은 노벨상 | 1949 | 훗날 심각한 논란이 된 치료법 |
| 4위 | 히틀러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 1939 | 반파시스트 의원의 풍자 추천 |
| 3위 | 간디가 끝내 받지 못한 평화상 | 1937~1948 | 다섯 번 추천됐지만 수상하지 못함 |
| 2위 | 죽은 사실을 모르고 수상자로 선정 | 2011 | 발표 당시 이미 사망한 수상자 |
| 1위 | 나치를 피해 노벨메달을 산에 녹임 | 1940 | 전쟁 후 금을 다시 회수해 메달 재제작 |
🏅 10위. 17세 말랄라 유사프자이
고등학생 나이에 노벨상을 받았다
2014년 노벨평화상은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인도의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에게 공동 수여됐습니다. 당시 말랄라는 17세였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전체 노벨상 분야를 통틀어 가장 어린 수상 기록입니다. 노벨재단 역시 말랄라를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랄라는 파키스탄 스와트 계곡에서 여자아이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다 탈레반의 공격을 받았고, 이후에도 교육권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보통 노벨상은 수십 년간 연구하거나 활동한 사람들이 받는 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말랄라는 아직 학교에 다닐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를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노벨상을 받은 뒤에도 학업을 계속했다는 점입니다.
👉 특이한 포인트
- 수상 당시 만 17세
- 노벨상 전체를 통틀어 최연소
- 학생 신분에 가까운 나이에 수상
- 수상 후에도 교육·인권 활동 지속
🏅 9위. 퀴리 가문의 노벨상
부모와 딸, 사위까지 모두 노벨상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노벨상 가족'은 단연 퀴리 가문입니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1903년 앙리 베크렐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마리 퀴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11년에는 노벨화학상을 다시 받았습니다. 즉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차례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넘어갑니다. 장녀 이렌 졸리오퀴리는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함께 193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재단도 퀴리 가문을 가장 성공적인 노벨상 가족 가운데 하나로 소개합니다.
더 재미있는 연결도 있습니다. 마리 퀴리의 둘째 딸 이브 퀴리는 노벨상 수상자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남편 헨리 라부이스는 훗날 노벨평화상을 받은 UNICEF의 사무총장을 지냈습니다. 한 가족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노벨상 역사가 계속 등장하는 셈입니다.
👉 특이한 포인트
- 부부가 함께 노벨상
- 아내는 노벨상을 두 번 수상
- 딸과 사위도 공동 수상
-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노벨상 연결
🏅 8위. 장폴 사르트르
"노벨상도 필요 없습니다"
1964년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 장폴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대부분의 작가에게는 평생의 영광일 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히 노벨상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전부터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 공식적인 명예와 제도권의 포상을 거절해 왔고, 작가가 기관에 의해 하나의 '제도'로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노벨재단도 사르트르가 모든 공식적인 명예를 일관되게 거부해왔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중요한 점은 노벨상을 거부했다고 해서 수상 기록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벨재단은 여전히 사르트르를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기록합니다. 즉, 수상자는 맞는데 상은 받지 않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 특이한 포인트
-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 본인이 자발적으로 거부
- 다른 공식 명예도 꾸준히 거절
- 노벨 기록상으로는 여전히 수상자
🏅 7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기뻐서 수락했다가 며칠 뒤 거절했다
1958년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처음 소식을 들은 그는 상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소련 정부와 공산당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닥터 지바고》가 당시 소련 사회에서 출판되지 못했고 서방에서 먼저 출판돼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엄청난 정치적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결국 그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노벨재단은 파스테르나크가 처음에는 상을 수락했지만 이후 소련 당국의 압력으로 거절하게 됐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르트르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사르트르는 스스로 원해서 거절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받고 싶었지만 받을 수 없었습니다.
👉 특이한 포인트
- 처음에는 수상을 수락
- 정부의 정치적 압력 발생
- 결국 수상식 참석 포기
- 자발적 거부와는 전혀 다른 사례
🏅 6위. 레득토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1973년 노벨평화상은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레득토에게 공동 수여됐습니다. 두 사람은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한 파리 평화협정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레득토는 상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매우 역설적이었습니다. 평화상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아직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벨재단에 따르면 레득토는 베트남의 상황을 이유로 상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노벨평화상을 자발적으로 거절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 상 자체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키신저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 두 명은 선정에 반대하며 사임했습니다. 노벨재단의 평화상 역사 자료 역시 1973년 수상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평화상 가운데 하나로 설명합니다.
👉 특이한 포인트
- 전쟁 종식을 이유로 평화상 선정
- 하지만 실제 전쟁은 계속됨
- 레득토는 이를 이유로 수상 거부
- 노벨평화상 자발적 거부의 유일한 사례
- 위원 두 명까지 사임한 논란의 수상
🏅 5위. 로보토미로 받은 노벨상
한때 혁신적인 치료법이었던 뇌수술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은 포르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였습니다. 그가 상을 받은 이유는 놀랍습니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전두엽 백질절제술(prefrontal leukotomy)의 치료적 가치를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흔히 **'로보토미'**라고 불리게 된 정신외과 수술입니다.
당시에는 조현병과 심각한 정신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약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뇌의 전두엽 연결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환자의 성격 변화와 인지기능 저하 등 부작용이 나타났고, 1950년대 이후 항정신병 약물이 등장하면서 로보토미 사용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노벨재단도 오늘날 이 수상을 다루면서 해당 치료가 이후 큰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현대인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이런 수술이 노벨상을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당시 의학 수준과 치료 대안이 거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함께 봐야 합니다.
👉 특이한 포인트
- 뇌의 연결을 절단하는 수술로 노벨상
- 한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시행
- 이후 심각한 부작용과 윤리 문제 제기
- 의학 발전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진 수상
🏅 4위. 히틀러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히틀러가 정말 평화상 후보였다고?
인터넷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히틀러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이 문장 자체는 기록상 사실입니다.
1939년 스웨덴 국회의원 에리크 브란트가 아돌프 히틀러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습니다. 노벨재단의 공식 후보 기록에도 히틀러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브란트는 반파시스트 정치인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스웨덴 의원들이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을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 브란트는 이를 비꼬는 풍자 차원에서 히틀러를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풍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거센 반발이 일어났고, 그는 1939년 2월 1일 추천을 철회했습니다.
따라서 "노벨위원회가 히틀러에게 평화상을 주려고 검토했다"라고 표현하면 틀립니다. 정확하게는 자격을 가진 한 추천인이 풍자를 목적으로 추천서를 제출했다가 철회한 것입니다.
👉 특이한 포인트
- 공식 후보 기록에 히틀러 이름 존재
- 추천인은 반파시스트 의원
- 진지한 추천이 아닌 정치적 풍자
- 논란이 커지자 즉시 철회
🥉 3위. 간디가 끝내 받지 못한 노벨평화상
가장 유명한 비폭력 운동가인데 노벨상은 없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들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마하트마 간디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간디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놓친 수상'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간디는 1937년, 1938년, 1939년, 1947년 그리고 1948년까지 총 다섯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습니다.
1948년에는 상황이 특히 기묘했습니다. 간디는 그해 1월 암살됐습니다. 당시에는 현재와 달리 사후 수상에 대한 규정이 지금처럼 엄격하게 정리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노벨위원회 내부에서 사후 수여 가능성까지 검토됐습니다.
하지만 결국 수상자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노벨위원회는 적절한 생존 후보가 없다는 취지로 평화상을 수여하지 않았습니다. 노벨재단의 역사 자료는 이것이 사실상 간디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노벨재단 자료는 오늘날 간디를 아예 'The Missing Laureate', 즉 '빠진 수상자'라는 표현으로 다룰 정도입니다.
👉 특이한 포인트
- 총 다섯 차례 후보 추천
- 비폭력 운동의 상징적 인물
- 생전 끝내 수상하지 못함
- 암살된 1948년에는 평화상 자체가 수여되지 않음
- 노벨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수상하지 못한 사람'
🥈 2위. 랠프 스타인먼
노벨상을 발표했는데 이미 사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
노벨상에는 원칙적으로 사후 수상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1974년 이후 규정상 수상자가 발표 전에 사망했다면 노벨상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11년 정말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011년 10월 3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브루스 보이틀러, 쥘 호프만 그리고 랠프 스타인먼이 발표됐습니다. 스타인먼은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의 발견과 면역체계 연구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발표 직후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스타인먼은 이미 사흘 전인 9월 30일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수상자를 결정한 것입니다.
규정만 놓고 보면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후 수상은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노벨재단 이사회는 긴급하게 규정을 검토했습니다. 결론은 특별했습니다. 위원회가 스타인먼이 살아 있다고 믿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선정했기 때문에 수상 결정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즉 그는 원칙적으로 사후 수상자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수상 발표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됐습니다.
👉 특이한 포인트
- 수상자가 발표 사흘 전 사망
- 노벨위원회는 사망 사실을 몰랐음
- 사후 수상 금지 규정과 충돌
- 재단이 긴급 검토 후 수상 유지
- 노벨상 역사에서 극히 드문 예외
🥇 1위. 노벨메달을 산에 녹여버린 과학자
나치가 코앞까지 왔는데 금메달을 화학용액에 넣었다
1940년 독일군이 덴마크를 점령했습니다.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 연구소에는 매우 위험한 물건 두 개가 있었습니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와 제임스 프랑크의 노벨상 금메달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치 정권에 비판적이었고, 메달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보어의 연구소에 맡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메달에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나치 독일에서는 금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이 심각한 범죄로 취급됐기 때문에, 독일군이 메달을 발견하면 두 과학자에게 큰 위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연구소에서 일하던 헝가리 화학자 게오르크 드 헤베시는 처음에는 메달을 땅에 묻는 방안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훨씬 기상천외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금메달을 화학적으로 녹여버렸습니다.
그가 사용한 것은 금까지 녹일 수 있는 강력한 혼합산인 왕수(aqua regia)였습니다. 드 헤베시는 훗날 독일군이 코펜하겐 거리로 들어오는 동안 자신은 연구실에서 두 메달을 녹이고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란빛 액체가 든 플라스크는 연구소 선반에 놓였습니다. 독일군은 연구소를 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화학용액처럼 보이는 병 안에 노벨상 금메달 두 개가 녹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드 헤베시는 용액에서 금을 다시 회수했습니다. 금은 스웨덴 왕립과학원으로 보내졌고 노벨재단은 라우에와 프랑크에게 새로운 메달을 제작해 돌려줬습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드 헤베시 자신도 194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됐다는 점입니다. 즉 노벨메달을 화학으로 없앤 과학자가 결국 자신도 노벨화학상을 받은 것입니다.
👉 특이한 포인트
- 나치에게 숨기기 위해 금메달을 녹임
- 금도 녹이는 왕수 사용
- 독일군이 연구소를 수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함
- 전쟁 후 용액에서 금을 다시 회수
- 노벨재단이 새로운 메달을 제작
- 메달을 녹인 과학자 자신도 훗날 노벨화학상 수상
🎖️ 보너스. 노벨메달 두 개가 서로 뒤바뀐 적도 있다
노벨메달에는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잘못 전달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메달 두 개가 서로 뒤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노벨재단의 메달 역사 자료에 따르면 서로 다른 수상자의 메달이 잘못 전달됐고, 이를 바로잡는 데 4년이나 걸린 사례가 있습니다.
또 201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브라이언 슈미트는 할머니에게 메달을 보여주려고 미국 노스다코타주 파고 공항을 지나던 중 공항 보안검색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순금 메달이 X-ray 화면에서 완전히 검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보안요원이 누가 줬느냐고 묻자 슈미트는 "스웨덴 국왕이요."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노벨메달 자체에도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셈입니다.
🤔 노벨상 후보가 됐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여기서 꼭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흔히 "히틀러가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스탈린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라는 사실만 떼어내 소개합니다. 실제로 스탈린은 1945년과 1948년 평화상 후보로 추천됐고, 히틀러는 1939년 한 차례 추천됐습니다.
하지만 '후보 추천'은 '최종 후보'나 '노벨위원회가 인정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분 의미
| 후보 추천 | 자격을 가진 교수·의원·과거 수상자 등 누구나 제출 가능 |
| 최종 후보 | 노벨위원회가 실제 검토 대상으로 좁힌 명단 |
| 수상자 선정 | 위원회의 최종 평가와 결정 |
노벨상 규정에서 정한 자격을 가진 교수, 국회의원, 과거 수상자 등은 후보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후보 명단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그중 일부만 실제 평가 과정에서 강력한 후보가 됩니다.
특히 히틀러의 추천은 앞서 설명했듯 풍자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뻔했다"라고 쓰면 사실과 크게 달라집니다.
🕯️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현재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1974년 이후 노벨재단 규정은 수상 결정 전에 사망한 사람에게 상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상자로 발표된 뒤 시상식 전에 사망했다면 수상은 유지됩니다.
1974년 이전에는 실제 사후 수상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193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 그리고 196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다그 함마르셸드입니다.
그리고 2011년 스타인먼 사건은 규정상 사후 수상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사망 사실을 모른 채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특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면 노벨상 관련 콘텐츠에서 흔히 나오는 오류를 피할 수 있습니다.
⚠️ 노벨상이라고 언제나 시대를 초월해 옳은 것은 아니다
노벨상은 해당 시대의 연구와 성과를 평가해 수여됩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른 뒤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가스 모니스의 로보토미 연구입니다. 1940년대에는 효과적인 정신질환 치료법이 거의 없었고, 당시에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심각한 부작용과 윤리적 문제가 드러났고 새로운 약물이 개발되면서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됐습니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노벨위원회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의 평가가 그 시대에 확보된 자료와 의료환경에 영향을 받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기존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노벨상을 거부하면 상금도 받지 못하나요? 사르트르나 레득토처럼 수상 자체를 거부한 경우, 상금과 메달 모두 받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반면 파스테르나크처럼 압력으로 수락을 철회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상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노벨재단의 공식 수상자 명단에는 여전히 이름이 남습니다.
Q2. 노벨위원회가 나중에 실수를 인정하고 수상을 취소한 사례는 있나요? 공식적으로 이미 수여된 노벨상을 취소한 사례는 없습니다. 로보토미로 상을 받은 에가스 모니스의 경우처럼, 훗날 그 성과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진 경우에도 수상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노벨재단은 해당 수상을 소개할 때 이후의 논란과 평가 변화를 함께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Q3. 앞으로도 스타인먼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생길 수 있나요?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최종 발표 직전까지 후보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스타인먼 사건처럼 발표 직전 며칠 사이에 사망 소식이 미처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이론적으로는 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재단이 확인 절차를 더 강화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완벽한 예방은 어렵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 마무리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엄숙한 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역사 자체는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입니다.
누군가는 노벨상을 받았지만 필요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누군가는 받고 싶었지만 정부 때문에 거절해야 했습니다. 한 과학자는 수상자로 결정된 순간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간디는 다섯 번이나 후보가 됐지만 끝내 평화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히틀러는 풍자 때문에 평화상 추천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로보토미는 당시 혁신적 치료법으로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지만 훗날 의료윤리 논쟁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 영화 같은 이야기는 1940년 코펜하겐의 작은 연구실에서 벌어졌습니다. 독일군이 건물을 수색하는 동안 한 화학자는 두 개의 노벨상 금메달을 산 속에 녹였습니다. 메달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금 자체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꺼내져 새로운 메달로 만들어졌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상을 지키기 위해 상 자체를 없애야 했던 순간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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