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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나폴리탄 괴담

공중목욕탕 이용 규칙 – 야간 이용자 전용 지침

by 밤에뜨는해 2025.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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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은 늦었고, 몸은 무거웠다.
집으로 곧장 가기엔 기분이 껄쩍지근해서
괜히 돌아가는 길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길에 있던 동네 목욕탕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몇 번 와본 적 있는,
낡고 허름한 그곳.

유리문 앞에 서니,
문 옆 벽에 낡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A4용지에 손글씨로 적은 듯한 내용.

  • 《공중목욕탕 이용 규칙 – 야간 이용자 전용 지침》※ 이 규칙은 오후 11시 이후, 심야 시간에 목욕탕을 사용하는 이용자를 위한 특별 지침입니다.
    ※ 본 규칙을 인지하고도 어길 경우, 다시는 이곳을 떠날 수 없게 됩니다.
    1. 입장 전,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빈 칸 하나는 반드시 남겨 둘 것.
    • 모든 칸이 다 차 있으면,
      누군가가 나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 샤워를 시작하기 전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눈을 맞출 것.
    • 거울 속 ‘너’가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그날은 안전합니다.
    • 하지만 미묘하게 동작이 늦거나 웃고 있다면,
      당장 물을 끄고 탈의실로 돌아가십시오.

    3. 샤워기 구역의 마지막 줄은 사용하지 말 것.
    • 맨 구석 샤워기에서는 사람 체온과 같은 미지근한 물이 나옵니다.
    • 그 물에 손을 오래 담그면,
      네 체온이 ‘그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4. 등을 밀어달라는 요청을 받아도 절대 대답하지 말 것.
    • 늦은 시간에 당신 말고도 누군가 있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 누가 먼저 말을 걸든, 대답하면 그와 ‘역할’을 바꾸게 됩니다.

    5. 세면대에 비누가 하나 더 생겼다면, 건드리지 말 것.
    • 당신이 들기 전까지 아무도 그 비누를 보지 못했습니다.
    • 손에 쥐는 순간, 당신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6. 탕 안에는 항상 사람 수보다 하나 더 많은 머리가 보여야 합니다.
    • 정확히 같은 수의 머리가 보이면,
      누군가가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다는 뜻입니다.
    • 그게 당신이 아니라면,
      곧 당신이 될 차례입니다.

    7. 탕 속에서 수면 아래로 발이 스치면, 바로 나올 것.
    • 다른 사람 발이 아닙니다.
    • 당신보다 먼저 있던 누군가가
      올라오려고 잡은 겁니다.

    8. 사우나실의 온도가 평소보다 낮다면, 안에 누가 있습니다.
    • 사우나 안에서 말을 거는 목소리는
      이미 열기에 익숙해진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 응답하면, 사우나 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습니다.

    9. 탈의실에서 본인 락커의 자물쇠가 열려 있다면,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나가십시오.
    • 누군가가 이미 당신이 입을 옷을 입었습니다.
    • 그 사람이 나가고 나면,
      남는 자리는 당신 것입니다.

    10. 퇴장 시, 신발장이 비어 있다면 그대로 나가지 말 것.
    • 당신의 신발은 여기에 남았지만,
      당신의 자리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신고 떠났습니다.

    📜 마무리 주의사항

    • 공중목욕탕은 몸을 씻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지워집니다.
    • 규칙을 지키면 일시적으로 안전하지만,
      지키지 못하면, 당신은 이 공간의 일부가 됩니다.

장난인가 싶었다.
요즘 공포 체험 마케팅인가 싶기도 하고.
나는 코웃음을 치며 문을 열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묵은 습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순간,
바람에 흔들린 종이가
작게 찰랑— 소리를 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게 아마, 오늘 밤 내 첫 번째 실수였을 거다.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넣는데,
문득 규칙이 떠올랐다.

‘한 칸은 비워둬야 한다고 했었지…’

나는 왠지 모르게 옆 칸은 비워두고 내 신발을 넣었다.
누가 보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탈의실의 거울 앞.
나는 셔츠 단추를 풀며 거울을 봤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거울 속 나도 함께 움직였다.
…그런데 0.5초쯤 느렸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머리를 숙였다.
거울 속 내가 따라했다.

하지만—
그놈은 웃고 있었다.


샤워장으로 향했다.
자동등이 켜지며 바닥이 촉촉하게 반짝였다.
나는 습관처럼 맨 구석으로 걸어갔다.

물을 틀자,
정확히 내 피부 온도와 같은 물이 나왔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
딱,
살결과 똑같은 온도.

그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등 좀 밀어주실래요…?”

나는 놀라 뒤를 돌았다.
아무도 없었다.
샤워기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탕 안에는 나 말고 한 사람 더 있었다.
그는 물 속에 목까지 담그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반대편 구석에 앉았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탕 안 풍경을 봤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했다.

탕 안에 보이는 머리 수가 이었다.
나, 그 사람… 그리고 탕 중앙 수면 아래
절반쯤 잠긴 머리 하나 더.


그리고
내 발등에 뭔가 스쳤다.

길고, 부드럽고,
미지근했다.

손이었다.

나는 그대로 튀어나왔다.


사우나실 앞을 지나가는데
문틈으로 속삭임이 들렸다.

“들어와… 자리 하나 남았어…”

사우나 온도는 평소보다 낮았다.
불이 꺼져 있었고,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았다.
걸음을 돌려 탈의실로 향했다.


락커 앞에 섰다.
내 번호의 자물쇠가 열려 있었다.

'내가 열었었나…?'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는 누군가 이미 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 얼굴은—
나였다.

단 하나, 웃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나는 신발장으로 뛰었다.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내 신발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

등 뒤에서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등 좀 밀어주실래요?”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입이 저절로 열렸다.

“…그래요.”


지금 나는,
탕 안 어딘가에 있다.
머리만 내놓고 앉아 있다.

탕 속 물은 내 체온이다.
누군가 들어올 때까지,
나는 조용히 기다린다.

그리고—
그가 샤워를 마치고 탕에 들어오면,
나는
부드럽게 발끝을 스친다.

“등 좀 밀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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