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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나폴리탄 괴담

0시 이후 PC방 운영 매뉴얼

by 밤에뜨는해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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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애 처음으로 알바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PC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 안에서는 익숙한 컴퓨터 소리와 함께 특유의 약간 답답한 공기가 느껴졌다. 낯설지만 어쩐지 기대되는 느낌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쪽에서는 미리 나와 있던 알바 선배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쪼르르 선배님 쪽으로 다가갔다.

선배님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손짓을 했다. 나를 가까이 부른 그는 주머니에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꼼꼼히 읽고, 절대 누구한테 보여주지 마세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선배님은 짧게 웃으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넵!" 하고 대답하며 두 손으로 메뉴얼을 받아 들었다.

조심스레 표지를 펼쳐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묘한 분위기의 글씨들이 보였다. 일반적인 업무 매뉴얼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감이 뒤섞인 채로, 나는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비공개] 0시 이후 PC방 운영 매뉴얼

– 내부 직원용 –

🛡️ 중요 공지

  • 본 매뉴얼은 0시 이후 PC방 운영에 관한 특별 지침입니다.
  • 외부 손님에게 절대 공개하거나 문의에 응답하지 마십시오.
  • 지침 불이행 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1. 자리 배정 규칙

  • 0시 이후 입장하는 손님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자리 자동 배정을 실시합니다.
  • 7번 자리는 절대 배정 금지입니다.
    ▶ 배정 실수 시, 즉시 전원 차단 → 조치 후 보고.
  • 7번 자리 앞을 지나가는 동안 손님이 갑자기 멈출 경우
    부르거나 손대지 않고 지나가십시오.

2. 장비 및 주변 시설 관리

  • 화면에 "초대" 메시지가 나타나면
    손님과 절대 대화하거나 개입하지 않습니다.
  • 헤드셋은 가급적 수거하며,
    ▶ 사용 흔적이 있을 경우 해당 좌석 즉시 봉쇄.
  • 프린터기에서 새벽 3시~4시 사이 종이가 출력될 경우
    내용 확인 금지, 즉시 소각 조치.
  • 4번 자리 모니터에 화면 깨짐 발생 시
    모니터를 가려 시야 차단.
  • 본체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경우
    ▶ 조용히 전원 플러그를 뽑습니다.

3. 손님 관리

  • 손님이 누군가와 소곤소곤 대화하는 경우
    관여 금지.
  • 손님이 음료를 쏟고 직접 닦으려 할 경우
    즉시 제지하고 직원이 처리합니다.
  • 동일 아이디로 3회 로그인 오류 발생 시
    손님을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 화장실 이용 중 손님이 거울 앞에서 이상 행동을 보일 경우
    따라 들어가지 말고, 상황을 기록합니다.

4. 퇴장 및 마감 규칙

  • 새벽 5시 무렵, 대부분 손님은 자발적으로 퇴장합니다.
  • 남아 있는 손님은 정리 대상입니다.
    ▶ 반드시 관리 기록에 남깁니다.
  • 퇴장 시, 인사를 하지 않는 손님
    출입문 자동 봉쇄 조치를 실시합니다.
  • 손님이 퇴장 중 뒤를 돌아볼 경우
    절대 재입장 불가, 출입문 봉쇄.

5. 비상 대응

  • 모든 이상 징후는 즉시 기록상급자에게 보고합니다.
  • 직접적인 개입 없이 조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것.

❗️주의사항

  • 본 매뉴얼의 규칙을 어기는 직원은, 이후 절차에 따라 특별 관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규칙을 숙지하고, 언제나 침착하게 대응하십시오.

🛡️ 생존과 안전은 당신의 철저한 규칙 준수에 달려 있습니다.

 


 

매뉴얼을 다 읽고 난 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책자에 적힌 내용은 상상했던 ‘손님 응대 방법’이나 ‘청소 요령’ 같은 게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섬뜩하고 이상한 규칙들이었고, 그 내용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정신을 다잡으려 했다. ‘설마 진짜겠어? 그냥 장난 아니야?’ 스스로를 달래보려 했지만, 손끝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무언가 불길한 기운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PC방 벽 한구석, 전자시계가 빨간 숫자를 또렷하게 비추고 있었다.

00:00

시계는 정확히 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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